인간에게 예술은 필수적이며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은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 향유할 수 있는 사치의 영역 또는 배운 자들만이 저변의 지식을 토대로 누리는 쉽사리 접근할 수 없는 어려운 영역으로 여겨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인간에게 주어진 유한한 시간의 한계로, 예술은 점점 현실과 충돌하는 환상의 영역으로 치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극 관람 후기를 쓰기 전에 거창하게 예술에 대해 짧게나마 떠들어 댄 이유는 이러한 시대 의식에서도 예술을 업으로 삼아 자기만의 길을 가고 있는 작가들에 존경심을 먼저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름 예술대학을 졸업한 덕분에 내 주변에도 영화, 연극, 조각, 미술 등 저마다의 형태로 예술의 길을 걷는 지인들이 꽤 있다. 암묵적인 약속처럼 정해진 사회 절차와 상관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고 내 지인이라는 사실이 누구보다도 자랑스럽다.
나 또한 비록 소량일지언정 잠재되어있는 예술 감수성이 도태되지 않도록, 하루에 절반 이상 머무르는 회사가 내 일상이자 전부가 되지 않도록, 국적불문 다양한 콘텐츠를 자주 접하려 노력한다. 생각만 하지 말고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는 연습을 해야 겠다. 가능한 창의적인 활동을 많이 해야지.
이제 어제 관람한 이머시브연극 걸리버여행기 후기를 써보려한다. 글의 순서는 아래와 같이 진행될 예정이니 참고 하면 좋을 것 같다. 먼저 이머시브연극이 뭔지도 몰랐기때문에, 이머시브 연극에 대한 설명과 간단한 예시를 소개하고, 걸리버여행기에 대한 미술, 연출, 배우로 요소로 나누어 짧은 감상평을 남길 것이다.
이머시브연극이란?
immersive는 담그다, 몰두하다라는 의미로 쉽게말해 관객이 작품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연극이다.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게 하는 연극이나 공연을 뜻한다. 우리말로는 관객 참여형 공연 또는 관객 몰입형 공연이라고 부른다.
관객 사이로 배우들이 내려와 춤추고 노래하는 경우는 물론 관객을 연기에 참여시키는 연극 등이 이머시브 시어터의 한 형태이다. 이 때문에 이머시브 시어터는 관객을 관람자에서 참여자로 격상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네이버 지식백과] 이머시브 시어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올 초에 위대한개츠비 이머시브공연이 있었다고 하는데, 코로나로 앵콜공연이 취소되었다고 한다. 미리 알았더라면 갔을텐데 너무 아쉽다. 특히 1920년대 분위기로 차려입고 가서 즐겼으면 더욱 재미있었을 것 같다. 갑자기 1920년대 우리나라를 생각하며 갔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또 일본 때문에 빡친다
이머시브연극 걸리버여행기를 감상하고
목요일 오후 공연인데다가 이머시브공연 특성 상 관람객이 10명 밖에 안되어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공석이 생겨 관람할 수 있었다.
이머시브공연 걸리버여행기는 동인천에 위치한 미림극장에서 개최되었는데, 미림극장은 옥상을 포함하여 4개 층의 공간에서 이루어졌다. 코로나에 대비하여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여 안전하게 관람이 이루어 졌고, 공연 중에 몰입을 위해 스마트폰 사용이 금지되어 있어 촬영은 못했다. 공연이 끝나고 간단한 음성인터뷰도 진행했는데 그마저도 너무 재미있었다.
이머시브 공연 관객 데뷔와 수줍은 한국인
첫 이머시브공연 경험자로서, 연극의 시작부터 설렜다. 10명의 관객도 걸리버여행기 공연을 함께 만들어가는 주체기 때문에 연극을 보러온 컨셉으로 연기를 해야했다. 그 시작을 알리듯 매표원 역을 맡은 배우가 우리를 맞이해주었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나도 완전 열심히 몰입해서 연기하고 4층까지 구석 구석 돌아보고, 배우들한테 말도 걸어야지! 했는데.. 단체활동에서 돌발행동을 하지 않는 한국인의 특성 상 잘 되진 않아서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걸리버 역할 배우분에게 말을 걸었는데 어디까지가 인터랙티브하게 작용할 수 있는 지 범위를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나중엔 말을 걸지 않았다. 나 떄문에 배우분이 몰입이 깨지면 안되니까..
환상의 세계로 이끈 훌륭한 무대 공간 미술, 연출, 퍼포머
공연이 끝나고 미림극장에서 나오고 동인천 일대가 여전히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만큼 재미있고 몰입하여 즐긴 공연이였다. 연출과 연기, 미술 3박자의 호흡이 잘 이루어져 50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몰입을 도울 수 있었다.
특히, 공지선작가가 꾸민 곳곳의 무대 공간이 인상적이였다. 환상의 세계로 몰입할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영리하게 활용했다고 느꼈다. 기본적인 조명과 소리 뿐 아니라 영상과 4dx영화를 보는 듯한 공감각적인 요소들을 활용한 점이 훌륭했다. 특히 식량난을 해결하고자 설계된 것으로 추측되는 라퓨타 왕국의 연구실 속의 수증기(가습기 일까나..)와 실제로 쌓여있는 모래더미와 모래시계처럼 계속해서 쏟아지는 모래로 후각까지 몰입시켜버린 해태로토피아 부분이 인상적이였다. 마지막 항해부분에서 비닐을 바닥에 깔아 놓은 것만으로도 내가 바다를 건너고 있구나 라는 느낌을 실감나게 꾸민 부분도 천재적이라고 느꼈다.
공간과 더불어 연출과 퍼포머분들의 연기가 걸리버여행기라는 환상의 세계 몰입을 완성시켜주었다. 처음 환타지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한 노래 연출이 재미있었다. 독도는 우리땅 노래에 맞추어 자본주의를 비꼬는 가사로 개사하여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 좋았다.
또한, 각 공간마다 배치되어있는 퍼포머분들도 모두 프로페셔널하고 멋졌다. 모래 위에서 사람이 아닌 것 같은 환상의 춤을 통해 공간을 꽉채우고, 후이늠에서 '말'을 연기한 배우분은 관객에게 '말'을 걸기도하시며 이머시브 연극을 보고있구나 라고 느끼게 해주었다. 제일 유쾌하였다.
뿐만 아니라 관객과 계속해서 함께 돌아다니는 걸리버 배우님이 마지막 항해에서 몸부림으로 무언가를 표현하실 때는 절규가 느껴졌는데 내가 구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몰입이 잘되었다. 내가 잘 느낀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간단하게만 정리해보았는데 공연의 모든 요소가 너무 훌륭하여 공짜로 이런 공연을 보아도 되나 싶은 송구한 마음이 들기까지 했다.
그래도 아쉬웠던 점이 하나있는데 공연이 끝나고서야 지도를 나누어주었다는 점이다. 걸리버여행기에 대한 자세한 사전지식이 없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공연 전에 미리 나누어주었으면 더욱 몰입하여 장소마다의 연출의도를 파악하며 이머시브 연극을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다.
다행히 아담한 미림극장의 크기 때문에 초행길임에도 길을 잃지 않고 준비된 무대공간을 다 볼 수는 있었다. 크지 않은 스케일의 이머시브연극을 준비하는 공연팀에게 최적의 공간이 될 것 같은 동인천 미림극장.
숨었던 명소 미림극장과 세금이 안아까운 인천문화재단
이머시브 연극 걸리버여행기는 인천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공연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인천문화재단에서 이런 퀄리티 좋은 공연을 후원해준다는 사실에 한 번 놀라고 미림극장이라는 공간에 또 한번 놀랐다.
내가 낸 세금이 이런식으로 사용된다면 기꺼이 더 낼 의향이 있다. 인천문화재단 화이팅
한국의 모든 청년 예술인에게 경의를 표하며,
이머시브연극 걸리버여행기를 통해 예술을 보편적으로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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