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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한국사 공부

조선후기2. 조직, 외교 feat. 맨발 미개한 일본에게 문화를 전파하던 조선통신사

by 천박사 2022. 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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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이후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조선의 외교정책의 변화와 일본 때문에 얼레벌레 빼앗긴 간도와 일본이 호시탐탐 자기들 땅이라고 우기는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역사적 증거를 공부할 수 있는 파트였다.

조선통신사 행렬 속 맨발에 바지도 안입은 일본인들.. 미개...

또, 조선 통신사를 공부하니까 일본이 왜 역사 교육을 안하는지 우리나라에 열등감이 심한지 깨달았다.

통신사 파견의 의미
일본은 조선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막부의 실권자인 쇼군이 바뀔 때마다 그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조선에 사절단 파견을 요청하였다. 조선이 알아서 일본으로 간 적은 없고 왜구의 요청이 있을 때에만, 임진왜란 이후부터 19세기 초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300~500명 정도 였으며, 일본에서는 이들을 국빈으로 대우하였다. 
일본은 통신사 일행을 통해 학문, 사상, 기술 예술 등 발달된 조선의 문화를 받아들였고 통신사가 도착하면 일본 사람들이 통신사의 숙소에 모여들기도 하였다.

"일본 사람이 우리나라의 시문을 구하여 얻은 자는 귀천현우 막론하고 우러러보기를 신선처럼 하고 보배로 여기기를 주옥처럼 하지 않음이 없어, 비록 가마를 메고 말을 모는 천한 사람이라도 조선 사람의 해서나 초서를 두어 글자만 얻으면 모두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감사의 성의를 표시한다." -신유한 "해유록"

 

조선후기1. 임진왜란 이후 붕당정치와 탕평, 세도정치까지 feat. 조선후기 왕 인조~효종의 삽질

외교, 정치에 대해 지난 포스팅에 자세하게 다루었으므로 간단하게 요약만 하였다.

 

<조선후기 통치체제의 변화 - 군사 중앙군>

1. 비변사는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기능과 권한이 확대되어 국정 최고 기구의 역할을 하였다.

2. 임진왜란 때, 훈련도감은 포수, 사수, 살수의 삼수병으로 편제되었고 삼수병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삼수미(쌀)를 세금으로 거두었다.

3. 인조는 수도의 방어를 담당하는 어영청, 수도 외곽을 수비하는 총융청과 수어청을 설치하였다.

 : 5군영 중 어영청을 중심으로 청나라를 정벌하는 북벌이 추진되었으나 시행한 적은 없고 오히려 정묘호란, 병자호란으로 얻어맞았다.

4. 숙종 때 금위영이 설치되면서 5군영 체제가 완성되었다.

<지방군>

6. 임진왜란 당시 지방군으로 양반에서 노비까지 모든 신분이 포함된 속오군이 편성되었다.

 : 평상시엔 생업에 종사, 농한기엔 군사훈련, 전쟁 시엔 전투에 동원 되는 극한 스케줄에 심지어 훈련에 필요한 비용은 스스로 부담해야 되었다. 심지어 점차 양반은 노비와 함께 편제되는 것을 회피하며 상민과 노비만 남게 되었다. 읽기만해도 억울한 속오군.. 

 

<조선후기 외교>

1. 광해군 때 기유약조를 체결하여 일본과 무역을 재개하였다.

2. 광해군은 후금과 전쟁에 나선 명의 요청에 따라 강홍립이 이끄는 부대를 파병하였다.

3. 인종, 정묘호란 당시 용골산성에서 정봉수와 이립이 의병을 이끌고 항전하였다.

4. 효종은 청에 당한 치욕을 갚기 위해 북벌 운동을 추진하였다. 그러나 모순되게도 청의 요청에 따라 나선정벌에 조총 부대를 두 차례 파견하였다.

5. 정조 때, 청의 문물을 받아들이고 배우자는 북학론이 등장하였는데, 대표적인 학자로 박지원, 박제가 등이 있다.

 

<조선후기 - 간도문제>

1. 숙종 때 청과의 국경을 정한 백두산정계비가 건립되었다.

 : 백두산정계비의 토문강의 위치를 두고 한국과 중국의 의견이 달라 간도 귀속 문제가 발생하였다.

2. 1903년 대한 제국은 간도에 거주하는 한인을 보호·관리하기 위해 이범윤을 간도 관리사로 임명하고 간도를 함경도의 행정구역으로 편입했다.

3. 1905년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후, 1909년 청나라와 일본이 자기들 끼리 만주의 철도부설권과 탄광 채굴권을 일본이 얻는 조건으로 간도를 청의 영토로 인정하였다. 홍철없는홍철팀

 

<조선후기 - 독도>

 

1. 세종실록시리지, 동국여지승람(성종) 등에 우리영토로 기록되어있다.

2. 숙종 때 어민 안용복은 일본으로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3. 1900년 대한제국은 칙령 제 41호를 통해 독도가 대한제국의 관할 영토임을 명시하였다.

4. 일본은 러일전쟁 중에 독도를 불법적으로 그들의 영토에 불법으로 편입시켰다.

5. 일제가 독도를 일본 영토로 불법적으로 편입시켰다는 사실을 알게 된 울릉도 군수 심홍택이 중앙 정부에 보고하였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최고 행정 기관인 태정관지령. 자기들이 쓴 것도 감추는 일본

 

조선후기3. 경제 - 상품, 화폐, 상인 등 자본주의의 싹이 트던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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