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1592년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임진왜란)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선초기는 KBS 드라마 태조 이방원을 통해 이해하고 있어서, 조선후기부터 공부를 시작한다.
조선후기 시작하자마자 잊고 있던 붕당정치를 공부해야한다. 나라를 위한 논쟁이 아니라, 자기 당파를 위한 이기적인 주장과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는 지금의 정치행태와(여·야) 별반 다르지 않아서 짜증이 많이 나는 파트였다.
그래서 짧게 요약 · 자료로 대체 하기로 하고, 짜증난 김에 조선후기 왕들에 대한 평가를 먼저 정리해보았다.
조선후기 왕들에 대한 사견
: 역사는 당시의 시대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하지만, 과오를 따지고 앞으로 대비를 하기 위해서는 나만의 사견을 정리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 같아 나름 평가를 해보았다.
🧨조선후기 최악의 왕🧨
인조 1등, 효종 2등, 선조 3등 (나머지 순조, 헌종, 철종은 아직 공부를 안해서 모르겠지만..)
👉선조는 이순신장군을 파격 기용하는 등 인재라도 알아봤지, 인조, 효종은 고집불통 외교 바보 삽질왕들이다.
특히 인조는 광해군을 인조반정으로 밀어내고 왕이 되었으면 잘했어야지, 서론들이랑 손잡고 친명배금(망한 명나라와 친하고 후의 청나라가 되는 후금을 배척한다)는 쌉소리나하며 최악의 외교를 펼친 점이 답답했다. 이후 괜히 외교 그지같이 했다가 정묘호란때는 강화로 도망가고, 병자호란때는 청에 절하고 머리를 조아리는 삼전도의 굴욕을 당한다.그러게 광해군이 중립외교하게 냅두지
인조의 아들 효종은 아빠 인조의 업보로 어린시절 청나라에 볼모로 끌려가기도 했었던 점은 안타깝다. 하지만 이후 시대를 잘 읽고 청나라와 외교를 잘 했어야지, 아빠가 병자호란 때 당한 굴욕에 앙심을 품고, 송시열을 포함한 서인세력과 함께 청을 정벌하자는 북벌론을 주장했다. 근데 그 와중에 청이 러시아와의 전쟁을 도와달라는 요청에 러시아와 청나라의 전쟁인 나선정벌을 도와준다. 말과 행동이 완전 다른 모순적인 왕이라 너무 싫다. 그러고서는 왕을 하는 동안 업적 없이 쓸데없는 예송논쟁이나 벌인 아들 효종을 남기는데..
👑조선후기 최고의 왕👑
정조 1등, 영조 2등
👉옷소매붉은끝동을 봐서가 아니라 머리가 너무 좋은데 자기만큼의 똑똑한 후사를 못남기고 일찍 죽은 것이 너무 안타깝다. 얼마나 똑똑했으면 신하를 교육하고 자신의 정책을 정하기 위한 "규장각"을 설치하고, 거기서 직접 젊고 똑똑한 신하들만 뽑아서 신하를 가르쳐 인재를 육성하는 "초계문신제"를 만들었냐고요..
옷소매붉은끝동에서도 나온 왕의 호위를 전담하게 한 군사조직 "장용영"도 설치해 군사기반도 확보하고, "동문휘고"라는 외교문서집도 편찬했다. 또, 성종의 경국대전과 할아버지 영조의 속대전을 통합하여 보완한 법전인 "대전통편"도 만들었다. 대정통편은 박제가, 유득공이랑 같이 만들었는데 이들은 서얼출신 이었지만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할 정도로 노비와 서얼에 대한 차별도 없앴다.
경제에서도 시전 상인의 금난전권을 폐지하여 자유로운 상업활동을 보장해주는 신해통공도 시행하고, 지금 수원의 화성도 정조가 만들었다고 한다. 아무튼 덕임이 의빈이랑 오래오래 잘 살아서 똑똑한 자손 많이 남겼으면 조선이 안망했을 수도 있었겠다.
<조선후기 - 붕당정치의 전개>
1. 사림은 척신 정치의 청산과 이조전랑의 임명 문제를 둘러싸고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었다.
2. 정여립모반사건을 계기로 3년동안 동인계 인물을 제거하는 기축옥사가 일어나 서인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 동인 출신 정여립이 역모를 꽤한다며 서인들이 누명을 씌운 사건
3. 서인 정철이 선조에게 광해군의 세자 책봉을 건의했다가 선조의 미움을 사 탄핵당하고 다시 동인이 권력을 잡게 되었다.
: 관동별곡을 쓴 그 정철 맞으나 동인들을 다 죽인 무서운 사람
4. 서인 정철에 대한 처벌문제를 두고 동인은 강경파인 북인과 온건파인 남인으로 나뉘었다.
5. 광해군이 즉위한 후 중립외교를 지지한 북인이 서인과 남인을 배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6. 인조반정으로 서인이 정국의 주도권을 장악하였다.
7. 현종 때 자의 대비 복상 문제를 둘러싸고 예송논쟁이 전개되었다.
: 1차 예송(기해예송)에서는 자의 대비가 상복을 1년동안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고, 2차 예송(갑인예송)에서는 남인이 주장한 1년 설이 받아들여져 남인이 정국을 주도하게 되었다.
8. 숙종 즉위 후 국왕이 주도하여 집권 붕당을 한쪽으로만 급격하게 교체하고 몰아주는 환국이 되풀이 되었다.
: 경신환국(허적, 윤휴 등의 남인 제거하고 서인 주도) > 기사환국 (장희빈 아들 원자책봉을 두고 서인 송시열이 반대하자 송시열을 처형하고 장희빈 왕비로 책봉, 인현왕후는 폐위. 남인 집권) > 갑술환국 (숙종이 인현왕후를 복위시키고 장희빈 내쫓아 남인 몰락, 서인 집권.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
<조선후기 - 탕평정치 영조&정조>
-영조업적- (아들이 사도세자)
1. 영조는 "속대전"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했다.
2. 영조는 붕당의 폐해를 경계하라는 자신의 뜻을 알리기 위해 성균관에 탕평비를 건립하였다.
3. 영조는 역대 문물을 정리한 "동국문헌비고"를 편찬하였다.
4. 영조는 백성의 균역 부담을 줄여 주고자 1년에 군포 1필을 징수하는 균역법을 실시하였다.
5. 영조는 홍수에 대비하여 준천사를 신설하고 청계천을 준설하였다.
-정조업적- (아빠가 사도세자, 할아버지가 영조)
1. 정조는 "대전통편"을 편찬하여 통치 체제를 정비하였다.
2.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국왕 친위부대로 장용영을 설치하였다.
3. 정조는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초계문신제를 시행하였다.
4. 정조는 유득공, 이덕무,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의 학자를 규장각 검서관에 등용하였다.
5. 정조는 육의전 이외 시전 상인의 특권을 폐지하는 신해통공을 실시하였다.
6. 정조는 대외 관계를 정리한 "동문휘고"를 간행하였다.
<조선후기 - 세도정치 순조, 헌종, 철종>
1. 정조 사후 안동 김씨, 풍양 조씨등 왕실의 외척을 비롯한 소수 특정 가문이 정치권력을 독점하여 국정을 운영하는 세도정치가 전개되었다.
2. 비변사는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권력 기반이 되었다.
3. 세도 정치 시기에 매관매직 등의 비리가 만연하였다.
4. 세도 정치 시기에 전정, 군정, 환곡 등 삼정의 문란이 심화되어 백성의 고통이 더욱 심하였다.
조선후기 정치 흐름을 알고싶다면? 최태성 샘의 한국사 22강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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