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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한국사 공부

일제강점기4. 1930년대 이후 저항~건국준비 활동

by 천박사 2022.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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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1. 1910~1930년대 식민통치

일제강점기2. 1910년대 저항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흐름 요약

일제강점기3. 1920년대 저항 - 국내 사회·경제적 민족운동과 국외 무장 독립전쟁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세계 경제와 정세에 위기를 느낀 일본은 침략 전쟁 미치광이로 돌변해 경제를 극복하려 하고, 우리나라를 자원으로 이용한다. 이에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는 민족말살통치를 시작해 인적, 물적, 정신적 수탈로 극심하게 탄압한다. 이 어려운 시기에도 국내에서는 우리말과 역사에 대한 연구와 활동이 활발했고, 국외에선 무장 독립 전쟁과 광복을 준비하기 위한 임시정부의 변화가 있었다.

 

<1930년대 이후 국내 민족 문화 수호운동>

1. 1931년 동아일보는 농촌 계몽을 위해 브나로드 운동을 전개하였다.

:  브 나로드는 러시아어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 민족말살통치로 우리말을 못쓰게 하고 창씨개명을 시킨 일제에 대응해 동아일보는 농촌 계몽 운동과 문맹 퇴치 운동을 하였다. 

 

2. 1936년 일부 신문이 베를린 올림픽에 있었던 손기정선수의 우승 소식을 전하면서 가슴에 있던 일장기를 삭제하였다.

: 이 와중에 지금도 힘든 마라톤 세계 1등하신 손기정 옹 대단하시다! 당시 탄압받던 한국인들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지..

 

3. 20년대 조선어 연구회에서 개편된 조선어 학회는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마련하고 표준어를 제정하였다. 또 우리말 큰사전 편찬 사업을 추진하였으나 일제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고의로 조작하여 한글 학자들을 검거·투옥하여 조선어학회를 강제 해산하였다.  

 

4.  저항 시인의 활동이 있었다.

: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육사 '광야', '절정' 등

 

5. 국사를 연구하는 3가지 사학이 발전했다.

구분 역사관 활동(대표인물, 저서...) 의의
1. 민족주의 사학 우리 역사의 자주적 발전과 우수성 강조 정인보 '조선사 연구', '얼' 강조.
안재홍과 '여유당전서'(1934)
20년대 신채호의 '낭가', 박은식의 '혼' 등 민족주의 사학 계승
2. 실증주의 사학 객관적 사실에 근거하는 문헌 고증과 학술 활동 전개(랑케사학) 이병도 등이 진단학회 조직(1934), 진단학보 발간 30년대 당시 일제가 만든 식민사관의 청구학회에 맞섬
3. 사회 경제 사학 사회주의에 영향을 받아 유물 사관에 입장에서 세계사의 보편적인 발전 법칙에 따라 한국 발전 백남운 '조선사회경제사', '조선봉건사회경제사' 일제 식민 사관의 정체성론을 비판

 

6.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가 증가하였고, 사회주의자 세력은 일제의 눈을 피해 혁명적 노동 조합과 농민 조합을 조직하고 농민과 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을 지키기 위한 운동을 벌였다.

: 1931년에 여성 노동자 강주룡은 임금 삭감 반대, 노동 조건 개선을 주장하며 평양 을밀대 지붕 위에서 고공농성을 벌였다.

 

7.  1944년 여운형 등은 국내에서 일제 패망과 광복에 대비하여 조선 건국 동맹을 결성하였다.

: 사회주의자와 민족 주의자를 망라하여 결성했으며, 민주 공화국 수립을 지향했다. 광복 후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로 개편되었다.

 

 

<1930년대 이후 국외 무장 독립 전쟁>

1920년대 국외 무장 독립 전쟁에서 1925년 미쓰야 협정으로 만주지역의 독립군의 활동이 위축되고, 3부로 결성되어있던 독립군은 3부 통합 운동을 통해 북만주는 혁신의회로, 남만주는 국민부로 재편되었었다.

 

1. 1931년 만주사변으로 중국 내 항일감정이 높아지자 만주의 독립군부대와 중국군은 연합작전을 전개하여 30년대 전반 일본군을 격퇴하였다.

지역 1920년대 체제 1930년대 체제와 군대 지휘 중국 연합 승리 전투
북만주 혁신의회 한국독립당, 한국독립군 지청천 중국 호로군 쌍성보전투(1932), 대전자령 전투(1933)
남만주 국민부 조선혁명당, 조선혁명군 양세봉 중국 의용군 영릉가 전투(1932), 흥경성전투(1933)
만주지역 동북항일연군(1936) 중국인 한국인 연합,
동북항일연군 내 한국인들이 조국 광복회 조직(1936)

 

2. 1935년 중국 관내에서 김원봉, 조소앙, 지청천 등 독립운동 세력이 연합하여 민족 혁명당을 결성하였다.

: 김원봉이 주도해서 조소앙등 민족주의 계열이 이탈하여 세력이 약화되었고, 조선민족혁명당으로 개편

> 1937년 중일 전쟁이 일어나고 사회주의 계열 단체들이 연합하여 조선 민족 전선 연맹 결성

> 1938년 중국 국민당 정부의 지원을 받아 중국 관내의 최초의 한인 무장 부대인 조선의용대 창설 (김원봉 등이 우한에서) > 일부가 적극적인 항일투쟁을 위해 화북 지역으로 이동하여 호가장 전투, 반소탕전 등에 참가 > 조선 의용군으로 재편(옌안). 이 때, 김원봉 등이 이끈 일부 세력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한국 광복군에 합류(1942)

 

3. 1942년 중국 화북지역으로 갔던 일부 조선의용대는 김두봉을 중심으로 사회주의계 인사들이 조선 독립동맹을 결성하였다. 군사조직으로 조선의용군을 편성하고 민주공화국 수립, 대기업 국유화 등의 내용을 담은 건국 강령을 발표 하는등의 건국 준비 활동을 했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쓰리봉이 계신다.
-원봉 : 의열단을 이끈 김원봉
-투봉 : 화북지역에서 조선 의용대를 이끈 김두봉
-쓰리봉 : 남만주 조선 혁명군을 이끈 양세봉 

 

<1930년대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변화>

여기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대략적인 흐름을 정리했기 때문에, 

 

일제강점기2. 1910년대 저항과 대한민국임시정부 흐름 요약

2022.01.09 - [미래를 위한 한국사 공부] - 일제강점기1. 1910~1930년대 식민통치 1910년 8월 29일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고, 헌병 경찰과 칼찬 순사들이 거리에 돌아다니며 독립운동가를 탄압하던 191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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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의 변화는 접은글로 복습

더보기

1. 1910년대 외교 중심 독립운동의 한계가 드러나 독립운동 방법론을 둘러싼 독립운동가 사이의 갈등 심화

2. 이와중에 1919년 2월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을 주도한 이승만은 미국의 윌슨 대통령에게 국제 연맹에 의한 위임 통치 청원

3. 이에 반발하여 임시 정부의 새로운 진로를 모색하려 국민대표회의(1923)를 진행

 : 창조파(신채호) vs 개조파(안창호) 의견 대립으로 회의는 결렬 > 독립운동가들이 이탈하고 임시정부는 침체

 

4. 1925년 위임 통치 청원의 책임을 물어 이승만이 탄핵되고 역사학자 박은식이 2대 대통령으로 선출

: 취임 후 국무령 중심의 내각 책임제로 개편 > 1927년 국무 위원에 의한 집단 지도 체제 체택

 

5. 1931년 김구가 임시 정부의 활성화를 위해 한인애국단을 조직

: 한인애국단원이던 이봉창은 도쿄에서,  윤봉길은 상하이 홍커우공원에서 폭탄 투하 후 의거

6. 한인애국단 윤봉길의 의거는 중국 국민당 정부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계기가 되고 임시정부는 1940년에 충칭에 정착.

7. 주석제를 도입하여 주석이 김구가 되었고, 한국 독립당과 한국 광복군을 창설(총사령관 지청천)

 

8. 1941년 개인, 민족, 국가의 완전한 균등을 추구하는 조소앙의 삼균주의를 기초로 한 건국강령을 발표

9. 1942년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합류

10. 1943년 영국의 요청으로 인도,미얀마 전선에 투입

11. 1944년 주석, 부주석제를 도입하여 김구 주석, 김규식 부주석 체제로 개편

12. 1945년 미국 전략 정보국(OSS)의 지원을 받아 국내 진공 작전을 준비 >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은 X

김원봉의 의열단 계열과 김구의 임시정부 계열만 간단하게 비교하였다.

시기가 다르지만 흐름을 보기 위해

임시정부(김구) 의열단(김원봉)
국민 대표 회의 (1923) 황푸군관학교입교
한인애국단(1931) -이봉창(일본) 조선혁명간부학교
  -윤봉길(중국)
> 중국 지원 계기
   
한국국민당(1935) 민족혁명당(1935)
    조선민족전선연맹(1937)
    조선의용대(1938) : 중국 관내 최초
한국 독립당(1940,충칭)    
한국광복군(1940) 지청천, 장준하 (일부 조선의용대 화북지역으로 이동) 호가장전투(1941)  > 조선의용군(옌안, 김두봉-조선독립동맹으로 )
(김원봉과 일부 조선의용대) 한국 광복군 합류(1942)  

 

 

 

1930년대 이후의 저항을 끝으로 일제강점기의 한국사가 끝이난다.

광복이후로 우리민족 끼리의 또 빡치는 현대사를 볼 자신이 없어서 미리 공부하길 잘했다. 오늘 회사에서 많은 일이 있었는데 다시 한번 단순히 한국사 1급 자격증 취득을 위해서가 아닌 '역사는 반복된다'가 절실히 느껴진 미래를 위한 공부가 맞음을 느끼는 하루였다. 

 

광복 이후 한국 현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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