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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이로 회담에서 미국, 영국, 중국이 한국의 독립을 처음으로 약속하였다.
🎇어짜피 일본이 전쟁에서 져서 독립을 하게된 건데 뭣하러 독립운동하냐는 사람들이 꼭 알아야 하는 역사적 사실.
👉카이로회담은 광복이 된 1945년 보다 2년 전인 1943년에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모여 했던 회담이다. 당시 동아시아 나라의 대부분이 일본의 식민지였지만, 우리나라 말고는 그 어떤나라도 독립을 약속받지 못했다. 나라 안팎으로 독립을 위해 투쟁한 독립운동가분들의 활동 덕분에 무시할 수도 있는 가난하고 작은 나라였던 우리나라의 존재감이 알려졌다는 반증이다.
2. 광복과 함께 여운형이 중심이 되어 조선건국 준비 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광복 전부터 있던 조선 건국 동맹을 계승하여 여운형을 중심으로 조직된 조선 건국 준비 위원회는 전국의 지부를 설치하고 치안 유지와 행정 문제를 담당하였다.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건준은 조선 인민 공화국 수립을 선포하고 미국과의 협상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미군정이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이후 우익 세력이 이탈하면서 해체되고 말았다. (조선건국준비위원회의 강령을 보면 완전한 독립국가,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기보 요구를 실현할 수 있는 민주주의 정권 수립을 준비하였었다.)
3. 모스크바 3국 외상 회의에서 한국의 임시 민주 정부 수립, 미·소 공동 위원회 개최, 최고 5년간의 신탁 통치 실시 등이 결의되었다.
👉 임시 민주 정부 수립도 포함된 결정 사항이 왜때문인지 신문기사에 나오지 않아 신탁 통치라는 말에 한국의 온전한 독립이 아니라는 오해를 사 신탁 통치 반대 운동이 전개되었다. 여기서부터 좌파와 우파의 갈등이 시작되는데, 좌파는 임시민주정부수립에 방점을 찍고 지지하고, 우파는 신탁통치에 방점을 찍고 독립정부 수립이 안될까 극심하게 반대를 하였다.
이런 좌/우 갈등이 아직까지도 끝나지 않고 계속 돌연변이가 생기고 거기에 극우, 극좌라는 틀린 꼬리표가 달리게 되는 것이였던 것이다. 생각은 다르지만 각자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의견이 갈라졌던 좌파 우파가 이제는 나라 망하려고 때나 쓰는 극우파와 극좌파로 물들어 버렸다. 도라이들아 제발 그만해!
4. 1차 미·소 공동 위원회가 무기한 휴회되자 이승만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주장한 정읍발언을 발표하였다.
👉 1차 미소공동위원회는 모스크바 3국 외상회의를 지지했던 좌파만 들어오게하자는 소련의 의견과 그래도 다들어오게해야지 하는 미국의 의견이 달라 좁혀지지 않고 휴회되었다. 이 때 분단의 시발점이 되는 짓을 이승만이 하게 되는데.. 우파 이승만이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먼저 선거하자'라고 정읍에서 헛소리를 하였다. 이것이 바로 정읍발언. 이러니 좌파였던 여운형과 김규식이 '안돼 좌/우 같이해야지'라며 좌우합작 운동을 주장하였다. (이게 맞는 것 같은데, 이승만 이때부터 미친짓 시작 싫어진다)
좌우 합작 운동에는 7원칙을 세웠는데 그중에 미소공동위원회를 속개하여 총선거를 남북한 함께 진행할 것과 토지개혁, 주요산업의 국유화, 무엇보다 친일파와 민족 반역자를 법을 만들자고 제안하였다. (이승만은 끝까지 친일파 청산을 외면했다. 지금 극우를 가장한 친일파가 잔존하는 원흉.. 완전 도라이죠) 미국도 지지하였지만 우파였던(지금 나쁜 극우파 뜻아님) 김구선생님만큼의 유명인의 지지를 받지 못했던 터라 지지를 철회하고 어영부영 끝나게 되었다. 이렇게 되었으면 우리나라는 통일된 국가였지 않을까?
5. 이후 제 2차 미·소 공동위원회도 참가자격을 좁히지 못하고 또 다시 결렬되고, 이제 UN이 나서게 된다. 유엔총회는 한반도에서 인구 비례에 의한 총선거 실시를 결의하였다.
👉UN총회에서 인구비례 총선거를 주장하자 소련은 '남한(당시 3.8선 기준으로 이남지역)이 인구 더 많잖아'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표류하다 1948년 UN소총회가 가능지역만이라도 총선거 하라는 주장을 한다. 이것이 6번 이후 치뤄진 3.8선 이남지역에서만의 5.10 총선거.
6. 남한만의 단독 선거 결정에 반발하여 일어난 무장봉기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제주도민이 희생된 제주 4·3사건이 일어났다.
👉제주도에는 4.3사건의 피해자로 한마을 전체가 제사기간이 같은 곳도 있다고 한다. 간첩이라고 무고한 시민을 무차별적으로 죽인 슬픈 역사이다. 이후 제주 4.3사건을 진압한다는 명목으로 여수 순천 10.19사건도 연달아 일어났다. 어휴 속이 답답해진다. 다행이긴하지만 너무 늦게 김대중대통령 정권에 들어서야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 횝고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런 비슷한 일이 80년 광주에서도 이미 발생했고 이를 왜곡하면서 희화화하는 미친인간들이 득세하는 시대를 사는 것이 슬프다. 이게 끝이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도 일어날까봐 무섭다. 민주주의 정신 계승한 민주당이 없어져버렸으니.. 반대쪽은 말할것도 없....고소당할까봐 누구라고 실명을언급하진 못하겠다. 현 정권이 마지막 민주주의가 되면 어쩌지 걱정이 된다.
7. 김구와 김규식 등은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해 남북 협상을 추진하였다.
👉남한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며, 임시정부 수립과 외국 군대의 즉시 철수 요구등을 한 공동선언문을 채택하였지만 결국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남과 북에 두개의 정부가 수립되고, 김구선생님이 암살되어버리고 만다. 통일정부 수립이 이때 좌절되어버렸다.
8. 결국 1948년 우리나라 최초의 보통선거인 5.10총선거가 실시되었고 이에 따라 제헌국회가 구성되었다.
👉 국회가 먼저 생기고, 총선거를 통해 국회의원을 먼저 뽑아 헌법을 수립한 다음에, 거기서 대통령제가 결정되었다. 국회의원들만 투표하는 간선제 형식으로 이승만이 대통령, 이시영이 부통령으로 선출되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선포했다. (1948.8.15) 유엔은 한반도에서 유일한 합법 정부로 승인하였다. 바로 다음인 48년 9.9 북한에도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수립했다. 후 분당의 시작 넘 안타깝다. (북한은 내각과 같은 정부기구인 북조선 인민위원회가 생기고, 거기서 선거를 통해 최고 인민 회의를 구성하여 수립됨)
👉5.10 총선거에 따라 탄생한 남쪽의 제헌국회에서는 유상매수 유상분배 원칙의 농지개혁법을 제정하고, 친일파를 청산하기 위해 반민족 행위처벌법(반민특위)을 제정하였으나 영화 암살의 마지막 장면처럼 어영부영 넘어가서 친일파 청산은 되지 않았다. 이승만정부는 친일파 청산에 처음부터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고, 국회 프락치사건을 공조해서 이승만 정부에 비판적이던 국회의원들을 공산당과 내통했다는 혐의로 다 제거해버리고, 이후 국회의 정부 견제기능이 약화됨에 따라 반민특위 공소시효를 1년으로 단축시키는 개정안을 통과시켜 버렸다. 일제강점기 35년동안 친일파짓한 인간들을 1년만에 어떻게 잡아들여 미친인간아 ㅜㅜ
9. 1950년 북한군의 남침으로 6.25 전쟁이 발발하였다.
👉북한군의 공세에 밀린 국군과 유엔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전쟁 발발 3일만에 북한군이 더 못내려오게 한강대교 폭파하고 지혼자먼저 튄 이승만 클라스..) > 인천상륙작전을 전개하여 1950년 9월 서울을 다시 수복 > 압록강 유역까지 진격한 국군과 유엔군은 중국군의 참전 > 흥남철수작전으로 후퇴 > 1951년 1.4후퇴(서울 다시 뺏김) > 서울 다시 뺏음 > 38도선 근처에서 전선 교착 > 소련의 제의로 휴전회담이 시작되고 군사분계썬 설정과 포로송환문제로 2년동안 협의만하게 됨 > 휴전에 반대하던 이승만 정부는 반공포로를 일방적으로 석방 (쌉소리그만해) > 드디어 1953년 7얼 정전협정이 체결되고 군사분계선 확정하고, 비무장지대를 설정. 이것이 바로 DMZ > 정전 협정 체결 이후 한국과 미국은 서로의 군사적 안전을 보장하는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
👉전쟁으로 이산가족과 막대한 인명/재산피해, 전쟁고아가 발생하고 현재가지도 남북간의 이념대립과 적대감이 이어져오고있다. 극우 극좌들 때문에 가까워보일 것 같던 통일도 멀어만보인다.
정말 역사를 몰랐던 나도 최태성샘의 한국사 강의 38강을 듣고 교제를 참고하여 정리할 수 있게 되었다.
(대부분의 내용은 교제에서 그대로 적었습니다)
읽기 귀찮다면, 최태성쌤 한국사 38강을 보면 완벽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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