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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한국사 공부

고려3. 고려의 경제와 사회 feat. 남녀평등? 역분전, 전시과, 건원중보, 은병, 해동통보, 상평창, 혜민국, 제위보, 구제도감

by 천박사 2022.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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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법전은 경국대전을 완성한 성종시대 까지는 남녀의 사회적 지위가 이지경은 아니였다. 그도 그럴 것이 고려시대를 공부해보니 고려시대의 여성의 지위는 조선시대와 비교할 것도 없이 높고, 심지어 현재까지 남아있는 관습보다도 성차별이 없는 열린 나라였다. 왜 이모양 이꼴이 되었을까..  

고려의 경제

1. 고려 건국 후 태조는 개국 공신에게 공로와 인품에 따라 역분전을 차등 지급하고 빈민 구제를 위해 흑창을 설치하였다.

👉흑창은 성종 때 의창으로 이름이 바뀌고 조선시대까지 이어짐

 

2. 고려시대 전시과는 관리에게 전지와 시지를 지급하여 수취의 권리를 행사하게 한 토지 제도이다.

-경종 때 마련된 시정 전시과 : 전·현직 관리에게 인품과 공복을 기준으로

-목종 때 개정된 개정 전시과 : 전·현직 관리에게 관직을 기준으로

-문종 때 정비된 경정 전시과 : 현직 관리에게만

 

3. 고려의 수취 제도로는 조세, 공납, 역이 있다.

-조세 : 토지 대장인 양안을 기준으로 부과

-역 : 호적을 기준으로 부과

 

4. 고려시대 후기 남부 일부 지역에서 벼농사에 이앙법(모내기법)이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이앙법이 전국으로 퍼진 것은 조선 후기

 

5. 를 이용한 깊이갈이가 일반화 되었다.

 

6. 고려 후기 원으로부터 이암은 농법을 정리한 '농상집요'를 문익점이 '목화씨'를 들여왔다.

👉조선 세종대왕은 우리 땅에 맞는 '농사직설'을 직접 정리

 

7. 고려시대에는 예성강 하구의 벽란도에서 송, 아라비아 상인 등과 국제 무역이 이루어졌다.

 

8. 성종 때는 우리나라 최초의 주화인 건원중보와 숙종 때는 은병(활구), 해동통보 등을 발행하여 화폐의 통용을 추진하였으나 실패하였다.

 

9. 개경의 시전을 감독하기 위해 경시서를 설치하였다.

👉신라 지증왕때는 동시전 

 

10. 물가 조절을 위한 상평창을 설치하고, 서적점, 다점 등의 관영상점이 운영되었다. 

👉고려 전기에는 관영 수공업과 소 수공업이 주로 이루어졌으나, 후기에는 민영 수공업과 절에서 이루어지는 사원 수공업이 발달

 

 

 

고려시대의 사회

1. 백정은 고려 시대에는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조선 시대에서는 주로 도살업에 종사하는 천민을 이르는 말이 되었다.

👉고려 시대 천민의 대부분은 노비였으며, 이들은 매매·증여·상속의 대상

 

2. 고려시대 향·부곡·소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신분은 양민이었으나 거주와 세금 등에서 차별을 받았다.

 

3. 향도는 매향 활동 등 각종 불교 행사를 주관하였다가 상장제례를 담당하는 마을 공동 조직으로 변화하였다.

 

4. 고려는 개경의 동쪽과 서쪽에 동·서 대비원을 두어 환자를 치료하였다.

 

5. 구제도감과 구급도감은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설치된 고려의 임시기구 였다.

 

6. 고려시대 서민의 질병 치료 기관인 혜민국에서는 병자에게 의약품을 제공하였다.

 

7. 기금을 모아 그 이자로 빈민을 도와주는 제위보가 운영되었다.

 

8. 자녀에게 재산을 균분 상속하는 일이 많았고, 딸도 부모의 제사를 모실 수 있어 자식들이 돌아가면서 제사를 지내는 윤행봉사를 하였다. 여성의 재가가 비교적 자유로웠으며 재가한 여성의 자녀도 사회적 차별을 받지 않았다. 사위와 외손자에게도 음서의 혜택이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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