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 | 의정부(정책 심의. 결정) | 6조 (실무 집행) | 이조 : 문관 임명 |
승정원 |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로 구성된 대간은 5품 이하 관리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 행사) | 호조 : 세금 관련 일 | |
의금부 | 예조 | ||
3사 -사헌부 (대사헌, 감찰) -사간원 (대사간, 간쟁) -홍문관 (대제학, 경연) |
병조 | ||
형조 : 장례원(노비호적, 소송 관한 일) | |||
공조 | |||
한성부 | |||
춘추관 | |||
성균관 |
조선의 중앙 행정조직
1. 의정부는 재상들의 합의로 운영되었으며, 정책을 심의·결정하여 국종을 총괄하였다.
2. 의금부는 국왕 직속의 특별 사법 기구로, 반역죄, 강상죄 등 중범죄를 다스렸다.
3. 승정원은 왕명의 출납을 맡은 왕의 비서 기관으로, 도승지를 비롯해 6명의 승지가 있었다.
: '정원','은대', '후원'으로 불리기도 함, 승정원에서 편년체로 기록한 승정원 일기는 유네스코 문화유산
4. 조선의 언론 기능을 담당한 사헌부, 사간원, 홍문관을 합쳐 3사라고 하였다.
: 사헌부는 관리를 감찰하고 자격을 심사하는 기관, 사간원은 정책에 대한 간쟁을 담당하는 기관. 홍문관은 집현전을 계승하여 성종 때 설치된 학술/언론 기관.(홍문관은 '옥당'이라고도 불리며 왕에게 경서와 사서를 강론하는 경연 주관)
: 조선시대 대간은 사헌부와 사간원의 관리로 구성되었으며, 5품 이하 관리의 임명 과정에서 서경권을 행사.
5. 조선 시대 수도의 행정과 치안을 담당한 관청은 한성부였다.
6. 조선 시대 실록을 보관하고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기관은 춘추관이었다.
7. 조선시대 장례원은 노비의 호적과 소송에 관한 일을 관장하였다.
조선의 군사조직
8. 조선은 전국을 8도로 나누었고 각 도에 관찰사를 파견하였다.
: 관찰사는 방백, 도백, 감사로도 불렸으며, 도의 감찰권과 사법권·징세권·군사권·수령 평가권을 가지고 있었음
조선의 지방 행정 조직
1. 8도 아래에 부·목·군·현에 파견된 수령은 지방의 행정·사법·군사권을 행사하였다.
: 경국대전에는 수령이 지방을 통치할 때 지켜야할 7가지 사항이 실려있고, 친족간에는 같은 관청에서 근무할 수 없는 상피제를 적용 받음
: 고려시대 특수 행정 구역인 향·부곡·소는 조선시대에 들어와 소멸
2. 각 지방의 향리는 수령을 보좌하며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아전의 역할을 하였다.
: 고려시대의 향리보다 역할이 약화되고 무보수 명예직. 호장, 기관, 장교,통인 4계열로 구분되어 단안 이라는 명부에 등재.
조선시대의 과거제도
1. 조선 시대 과거는 양인 이상이면 누구나 응시할 수 있었으나, 문과의 경우 서얼과 재가한 여성의 자손은 응시할 수 없었다.
2. 문신을 선발하는 문과, 무신을 선발하는 무과, 기술관을 선발하는 잡과로 이루어졌다.
3. 조선시대 2품 이상 고위 관료의 자제는 시험 없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문음이 있었다.
4. 하급 관리들은 과거와는 별도로 취재라는 시험을 통해 선발되었다.
조선시대의 군사조직
1. 조선 전기에는 중앙군으로 궁궐과 도성의 수비를 담당한 5위를 지방군은 영진군을 두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 후기에는 훈련도감(5군영)+속오군으로 개편 : 훈련도감은 포수, 사수, 살수 삼수병으로 구성되었으며 직업군인이었으며 속오군은 양반~노비로 구성
2. 조선 시대의 군사 조직은 양인개병과 농병일치의 원칙을 적용하여 의무병으로 구성되었다. 향리부터 노비까지 구성된 잡색군은 유사시에 향토방위를 맡는 예비군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3. 세조 이후 지역 방어 체제인 진관 체제를 실시하였다.
👉명종 때는 도 단위 방어 체제인 제승방략을 실시하고 임진왜란 중에 진관(속오군)체제로 복귀
조선 초기의 외교정책
조선의 외교 정책은 명에 대해서는 사대를 여진, 일본, 유구 등에 대해서는 교린을 표방하였다.
1. 조선 초 태조와 정도전이 요동 정벌을 주장하여 명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
2. 여진에 대한 정책
-세종 때 김종서가 여진을 몰아내고 6진을 설치하였다. 4군 6진 개척 이후 이 지역으로 강제 이주 시키는 사민 정책과 토착민을 지방관으로 임명하는 토관 제도가 실시되었다.
-한성에 여진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북평관을 개설하여 조공 무역을 허용하고, 국경 도시인 경성과 경원에 무역소를 설치하여 여진을 회유하였다.
3. 왜(일본)에 대한 정책
- 세종 때 이종무가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섬을 정벌하였다. (지금의 대마도)
- 세종 때 부산포, 창원(진해)의 제포, 울산의 염포. 3포를 개항하고 계해약조를 체결하여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용하였다.
임진왜란 이전
1. 중종 때 외적의 침입 등 군사적인 사안에 대비하기 위한 임시 기구로 비변사가 설치되었다. 비변사는 명종 때 을묘왜변을 계기로 상설 기구가 되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개
1. 임진왜란1592년
-왜군의 침략 > 부산진·동래성 함락 > 충주 탄금대 전투(신립)의 패배 > 선조의 의주 피란
-수군의 활약 : 옥포해전(이순신, 해전에서의 첫 승리), 한산도대첩(이순신, 학익진전법) 등 남해의 제해권 장악
-의병의 활약 : 자발적 조직, 향토 지리에 알맞은 유격전 전개, 북관대첩(정문부)
-명군의 참전, 관군 재정비 : 진주대첩(김시민) > 평양성 전투(조명연합군) 승리 > 행주대첩(권율) > 명과 일본의 휴전 협상
2. 정유재란(1597)
-휴전 회담 결렬, 왜군의 재침입 > 명량·노량해전(모두 이순신장군.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으로 조선이 승리
1. 일본군에게 부산진 등이 함락되자 신립은 충주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항전하였다.
2. 임진왜란 3대 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 권율의 행주대첩이다.
3. 임진왜란 당시 조·명 연합군이 평양성을 탈환하였다.
4. 이순신이 명량에서 왜의 수군을 대파하였다.
임진왜란 이후 광해군의 외교
1. 광해군은 왜란 이후 공납을 쌀로 거두는 대동법을 경기도에서 처음 시행하여 농민의 부담을 줄여주고, 허준에게 동의보감을 편찬하라고 하였다.
2. 광해군은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 정책을 추진하였다.
: 후금과 전쟁 중이던 명에 요청에 따라 강홍립 부대 파견
3. 임진왜란 이후 일본의 요청으로 공식적인 외교 사절인 통신사가 다시 파견되었다.
: 이도 막부의 요청으로 기유약조 체결
4. 광해군은 인조반정이 일어나 폐위되었다.
외교 쌉못하는 인조의 굴욕 외교 feat. 친명배금
1. 인조와 서인 정권은 외교적으로 친명배금 정책을 펼쳤다.
2. 후금은 광해군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을 내세워 정묘효란을 일으켰다.
3.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조선 왕실은 강화도로 피난하였다.
4. 후금은 국호를 청으로 바꾸고 조선에 군신 관계를 강요하며 조선을 침략해 병자호란을 일으켰다.
5.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는 이번에는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지만, 삼전도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함으로써 병자호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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