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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부

위안부 피해에 대해 영어로 말하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를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

by 천박사 2020.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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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시절 내 꿈은 일본군 성노예제로 피해를 입은 우리 할머니들을 위해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것이였다. 수능의 한 과목으로 남을 수 있었던 '근현대사'를 가슴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선생님 두 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새겨주기 위해 학생들을 대하시던 그 열정적인 모습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아마 두 선생님을 거친 우리학교 학생들은 모두 올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아니라면 인성에 문제있다.

 

성인이 되면 꼭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로 이 만행을 알려야겠다는 당찬 포부가 있었던 나는 실제로 사학과와 영화과로 유명한 대학들을 지원했었고 그 중 합격한 영화를 전공하게 되었다. 이후 당찼던 내 포부는 어디론가 던져버리고, 

지속적인 분노감만 갖고 얼마 남지 않은 할머님들을 위해 실제로 행동으로 실천한 것은 전혀 없었다. 기부가 되는 굿즈를 산 정도...? 스스로 반성하다.

 

그러다 오늘 일본 정부를 상대로한 손해배상 소송 관련 진술을 마친 이용수 할머님의 기사를 보았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일이라도 당장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블로그 포스팅을 시작했다.

 

평범한 일상에서도 관련된 기사나 사진을 마주할 때면, 1초의 여유 순간도 없이 가슴이 미어지고 옥죄어진다. 생각만으로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일은 많지만 말 못할 슬픔과 억울함이 동반하는 일은 일본군 성노예가 대표적일 것이다. 하루 빨리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사과가 있어야할 것이다. 최소한의 도리이다.

 

이제 작년 11월 재판이 시작될 때 원고 중 피해 생존자는 네 분 밖에 남지 않았다는 소식에 가슴이 철렁하고 자괴감이 들었다.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이신 이용수 할머님의 사진을 보니 더 마음이 아팠다. 할머님 분들의 건강은 나날이 나빠지시는데 일본놈들 정말 줘패고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하는 일본정부가 정신을 차리길 오늘밤에도 기도한다.

 

먼저, 위안부라는 용어에 대한 표현을 확인하고 일제의 만행에 대해 영어로 설명하는 순서로 이 포스팅을 마무리 하려 한다.

 

위안부에 대해 영어로 이야기 할 땐, 이렇게 해주세요

먼저, 용어는 위안부를 직역하기 보다는 일본군에 의한 강요된 성노예라는 범죄의 본질을 드러내기 위해 아래와 같이 표현해야 합니다.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혹은 enforced sex slaves.

어디선가 comfort woman 이라고 표현을 하는데 일본이 억지로 '위안', '부'를 번역하여 만든 본질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는 엉터리단어입니다.

 

쓰지 맙시다. 종군위안부, 정신대 라는 표현
* 종군위안부 : ‘종군’에는 자발적이었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정신대 : 일본의 전시체제 돌입과 함께 조선의 노동력을 강제 동원한 제도를 말하며, 여성의 경우 여자(근로)정신대라는 이름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습니다.

ㄴ노동력을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니라 성착취였기에 사용하지 맙시다.

 

 

일본군성노예제란, 1930년대부터 1945년 일본이 패전할때까지, 일본군이 식민지 여성들을 동원해 성노예로 만든 범죄이다. 

The Japanese Military Sexual Slavery system refers to crimes that the Japanese military committed from 1930s to 1945, when Japan was defeated. 

 

한국 정부에 등록된 피해자들의 실태조사를 통해 확인된 바로는 연행 당시의 나이가 11세에서 27세에 이르며, 피해자 대다수가 취업 사기, 유괴, 납치 등의 방식으로 동원되었다.

According to the reports on the victims registered with the Korean government, the age of victims ranged from 11 to 27. Most of them were drafted by abduction and job fraud.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월경, 임신 뿐만 아니라 질병에 걸리더라도 무자비하게 강간을 당했다. 피해 여성들은 마음대로 ‘위안소’를 떠날 수 없었고 기본적인 이동이나 생활도 통제를 받았다.

'Enforced sex slaves by Japan were brutally raped even when they were having periods, pregnant, or sick. The victimized women could not leave the ‘comfort stations’ on their own will, and even the most basic living and moving conditions were under restrictions.

 

1945년 일본의 패전과 함께 일본군 성노예로 끌려간 여성들은 현지에서 버려지거나 폭격으로 사망, 혹은 일본군에 의해 살해당하기도 했다. 생존자들은 고향으로 돌아오기 위해 다시 고난에 직면해야 했고, 일부는 고향으로 돌아올 수 없어 귀국을 포기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After Japan was defeated in 1945, ‘Enforced sex slaves by Japan’ were abandoned in the countries they were taken to, dead by bombings, or killed by the Japanese military. Survivors struggled with finding a way back home, or had to give up going back home. 

 

뿐만 아니라 일본군성노예제 피해자들은 ‘위안소’에서 당한 구타나 고문 그리고 성폭력 등으로 인해 평생 치유하기 힘든 신체적 고통 속에 살며, 심지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경우도 많았고, 이로 인해 가정을 이루는 것도 어려웠다. 

The wounds and trauma from beatings, torture, and sexual violence in the ‘comfort stations’ left the victims in pain, unable to give birth or have a family of their own. 

 

그러나 아직까지 일본정부는 관여 사실을 부인하며 사과한마디 하지 않고있다. 

However, the Japanese government denied its involvement with the issue and has not apologized.

 

 

생존자들은 적극적으로 일본의 범죄행위를 고발해왔다. 그리고 명예와 인권회복을 외치며 자신과 같은 피해를 겪는 사람이 없도록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며 여성 인권·평화 운동가로 활동했다.

Survivors have actively accused Japan of criminal activities. And they has worked as a women's human rights and peace activist, saying, "We should create a peaceful world so that no one suffers the same damage as us, calling for honor and human rights recovery."

 

 

이제 피해자 할머님들은 이미 돌아가시고 몇 분밖에 남지 않았다. 이제라도 피해자 할머님들을 위해 일본 정부는 하루 빨리 사과를 해야한다. 

But unfortunately, there are only a few surviving victims left because they are old or have already passed away. Before it is too late, for them, the Japanese government should apologize as soon as possible.

 

 

역겨운 증거들

직접적이고 쉽게 영어로 위안부의 실체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정의기억연대의 자료를 토대로 수정을 좀 하였는데, 너무 부족하여 주기적으로 글을 써볼 예정이다.

 

남겨진 우리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이라도 실천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다.

 

저는 조선의 여자아이였다는 이용수 할머님의 증언과 엄마를 외치던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게 가슴에 박혀 잠을 못이루시는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지는 하루이다.

 

피해자이자 인권운동가인 우리 할머님들이 건강하게 꼭 사과를 받는 모습을 보고싶다. 건강하시길 기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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