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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위한 한국사 공부

조선후기5. 문화 - 실학(국학, 지도), 과학기술, 회화, 건축, 문학의 발달 feat. 옷소매붉은끝동 조선후기 고증

by 천박사 2022.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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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1. 임진왜란 이후 붕당정치와 탕평, 세도정치까지 feat. 조선후기 왕 인조~효종의 삽질

조선후기2. 조직, 외교 feat. 맨발 미개한 일본에게 문화를 전파하던 조선통신사

조선후기3. 경제 - 상품, 화폐, 상인 등 자본주의의 싹이 트던 시기

조선후기4. 사회 - 평등사회로의 움직임 feat. 홍경래, 임술농민봉기, 양반전

 

조선 후기, 인조반정 이후 송시열을 비롯한 서인은(노론, 소론) 양반 중심의 지배 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성리학을 절대적 가치로 내세운다.

1. 반발 : 이에 윤후와 박세당 등 남인들은 반발하며 유교 경전의 재해석을 시도했다. 하지만 노론(서인의 분파)들은 유학의 도리를 어지럽히고 세상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다며 '사문난적'으로 몰았다.

2. 양명학의 수용 : 한편, 일부 소론 학자들은(서인의 분파) 명나라에 의해 성립한 양명학을 연구하기도 했다. 양명학은 18세기 정제두에 의해 체계화되어 강화학파를 형성하고, 앎은 행함을 통해서 성립한다는 지행합일과 실천을 강조했다.

👉성리학이 조선 후기인 17~18세기 사회 현실 문제의 해결 방안에 대한 방법을 제시하지 못하면서 실학이 발달한다. 

 

<조선후기 실학의 발달>

실학은 농업 중심 개혁의 중농학파, 상공업 중심의 중상학파, 국학 연구등으로 발전하였다.

공통적으로 민생 안정과 부국 강병을 추구하며 사회 개혁론을 제시하고 실증적·민족적·근대 지향적 성격을 띈다.

농업, 상공업 개혁론 국학 연구
중농학파(경세치용학파) 중상학파(이용후생학파, 북학파) 한글 -신경준 <훈민정음운해> : 훈민정음 발음 원리 과학적 규명
-유희 <언문지> : 음운 연구
-이의봉 <고금석림> : 방언, 해외언어 정리
유형원 <반계수록>
-균전론 : 신분에 따라 토지 분배
✔유수원 <우서>
-상공업의 진흥과 기술혁신 강조
-사농공상의 직업적 평등 주장
지도 ✔정상기 <동국지도>
: 최초 100리척사용
✔김정호 <대동여지도>
: 10리마다 눈금표시, 목판제작 해 대량인쇄가능, 산맥, 하천, 포구, 도로망 자세히
✔이익 <성호사설>,<곽우록>
-한전론 : 영업전으로 땅을 한정짓고 매매 금지
-6가지 폐단 지적 '6가지 좀'
(양반,과거제도, 노비, 승려, 미신, 게으름)
✔홍대용 <임하경륜>,<담헌서>, <을병연행록>
-혼천의 제작
-중국 중심의 세계관 극복
"지전설", "무한우주론" 
지리서 이중환 <택리지>
: 각 지방의 자연환경, 인물, 풍속 등을 기록한 인문 지리서
한백겸 <동북지리지>
: 삼한의 위치, 고대 지명 고증
✔정약용 <아방강역고>
: 강역에 관한 역사지리서
✔정약용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의학, 과학, 농학, 지리학 모든 면에서 천재였던 조선의 레오나르도다빈치
-여전론 > 정전론
: 토지의 공동 소유·경작, 노동량에 따라 분배 > 우물 정 井
-실학을 집대성

✔박지원 <열하일기>
과거시험 백지로 내고 여행을 즐긴 자유영혼 양반
-양반 풍자 한문소설 저술
(양반전, 허생전, 호질 등)
-수레와 선박 이용 강조
-화폐 유통 필요성 주장

박제가 <북학의>
정조가 서얼출신인데도 규장각 검서관으로 등용했던 똑똑한 人
-청 문물의 수용, 수레와 선박 이용주장
-절약보다는 소비 주장
(자본주의 꿈틀)

백과사전 ✔이수광 <지봉유설>
: 우리나라 백과사전 시초
✔18~19C
이익 <성호사설> :6가지 좀, 서유구 <임원경제지>: 농업위주
✔영조의 국가사업 <동국문헌비고>
: 우리나라 역대 문물 정리
✔정약전 <자산어보>
: 흑산도 연해 어류학서
역사 ✔ 고조선~고려
-안정복 <동사강목>:우리역사 정통론
-한치윤 <해동역사>:국내외 500여종 자료 참고하여 실증적으로 서술

✔ 만주로 시야 확대
-이종휘 <동사>
-유득공 <발해고>:'남북국' 용어 사용

김정희 <금석과안록>
:진흥왕 순수비 해독 및 고증

✔이긍익 <연려실기술> : 조선사

📌실학자 박지원의 행보가 너무 매력적이여서 따로 유튜브를 찾아보았다. 굳이 외우지 않아도 대세의 변화와 시대 흐름을 꿰뚫어본 박지원, 명문 양반가문에서 태어나서 조선후기에도 하고싶은대로 막 산 똑똑한 사람! 너무 재밌다.

 

 

 

<조선후기 과학기술, 서민 문화의 발달>

조선 후기는 청나라와 왕래하며 서양 문물을 수용했다. 선조 때는 세계지도인 곤여만국전도를 받아들여 이전까진 중국이 세계의 전부인줄 알았던 조선인의 세계관을 확대에 영향을 주고, 인조 때는 정두원이 화포, 천리경, 자명종 등을 들여왔다. 

 

한편, 이모작으로 농업생산력이 증대하자 서민의 경제적 지위가 향상되어 상품 화폐 경제도 발달하고 서당 교육의 보급으로 서민의 의식수준이 높아졌다. 이에 서민들 사이에는 인간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해학과 풍자로 사회를 비판하는 서민 문화가 발달한다.

 

노래와 사설을 줄거리로 풀어 가는 판소리, 양반과 승려의 위선이나 사회의 부정 비리를 해학적으로 풍자하는 탈춤, 자유로운 형식으로 남녀간의 사랑을 표현하고 현실에 대한 비판을 하는 사설시조, 한글 소설(홍길동전, 춘향전, 토끼전, 심청전, 장화홍련전, 사씨남전기...)이 발달했다. 

 

<조선후기 회화와 서예>

✔ 진짜 경치를 담았다는 뜻의 진경산수화가 발달했다.

: 겸재 정선이 우리 자연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

인왕산을 그린 <인왕제색도>와 금강산을 그린 <금강전도>

✔ 서민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을 그린 풍속화가 유행하였다.

-단원 김홍도는 서당, 무동, 타작, 씨름 등의 작품을 남기고, 신윤복은 월하정인, 단오풍정등의 작품을 남겼다.

서민을 익살적이고 소탈하게 표현한 단원 김홍도의 <서당>, 여성과 양반, 남녀간의 애정을 주로 그린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김홍도의 화풍을 계승한 김득신의 <파적도>

✔ 이외 서양화풍인 수채화 기법과 원근법을 도입하여 동양화와 접목시킨 강세황의 <영통동구도>가 있으며, 민중의 소망과 기원을 담은 민화도 유행했다.

강세황의 영통동구도

✔ 김정희가 추사체를 창안하고(그래서 추사 김정희), 제주도 유배 시절 세한도를 그렸다.

제주도 유배시절 김정희에게 제자가 잊지 않고 책을 보내주어 고마운 마음에서 그려준 세한도. 국보 제180호

 

<조선후기 건축·공예>

✔조선 후기에는 규모가 큰 사원 건축물이 많이 지어졌다.

17세기에는 양반 지주층의 지원으로 구례 화엄사 각황전, 김제 금산사 미륵전,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 지어졌다.

: 구례 화엄사 각황전은 현존하는 중층 건물 중 가장 큰 규모, 김제 금산사 미륵전은 3층 건물이지만 내부는 거대한 미륵 삼존불 입상을 보안하기 위해 통층,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현존하는 유일의 조선 시대 목탑

18세기에는 부농과 상인층의 후원으로 논산 쌍계사, 부안 개암사 등의 불교 사찰이 지어졌다.

✔정조 때, 정약용이 거중기를 제작하여 수원 화성 축조에 이용하였다.

✔조선 후기에 회회청 또는 토청 등의 코발트 안료를 사용한 청화백자가 널리 보급되었다.

청화백자

🎇드라마 옷소매붉은끝동으로 보는 한국사. 조선 후기 고증 장면
1. 덕임이가 궁녀들에게 전기수놀이를 하며 돈을 번다.
2. 그 돈은 숙종때 전국적으로 유통되기 시작한 상평통보. (숙종과 무수리 최씨 사이에 아들이 드라마 속 영조) 
3. 산이(정조)랑 덕임이가 출궁해서 동국문헌비고를 보며 "좋은책이지" 라는 대사를 한다.
 : 동국문헌비고는 영조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역대 문물을 정리한 백과사전 책
4. 덕임이(의빈)가 죽고 정조의 모습을 보여줄 때, 호위부대인 장용영을 설치하고 뿌듯해하다가 장용영 부대에서 덕임이 친오빠를 만난다.
5. 홍국영한테는 안알려준 정조가 하고자 하는 일 첫번째는 화성축조였다.
: 정조가 규장각에서 초계문신제로 육성하는 신하들과 수원 화성을 축조하려고 준비하는 모습도 나온다.

더 있던 것 같지만 아무튼 고증도 철저한 갓드라마. 넷플릭스가 사가서 전세계인이 봐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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